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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사랑의기술_에리히프롬

반야 Prajna 2021. 6. 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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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프롬은 사랑을 흔히 생각하는 ‘감정’의 영역이 아닌 ‘기술’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사회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관습’과 ‘계산’이 대신 들어서 있다.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사랑을 고갈시킨 외부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외부적 요인에 더해 프롬은 개인의 무의식층까지 파고들어가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이유를 밝혀낸다. 프롬은 인간이 참된 자아를 상실한 것이 사랑을 상실한 원인이라 진단한다.

(...)

그렇기에 사랑은 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가 된다. 사랑은 신이 준 능력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안이한 대답을 하기에는 현대 사회와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교묘해졌다. 그러므로 이제 사랑을 회복하는 데는 절실하게 기술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프롬은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실패하는 원인은 기술의 미숙성에 있다고 말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사랑의 기술을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밝혀놓았다. 프롬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다.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에 대한 이론이나 사랑을 실천하는 기술 외에도, 뛰어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의 현대 문명과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도 담고 있다.

🍀본문 발췌🍀

* 인간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다.
그러나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그는 받으려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데 되돌아오는 것을ㅇ 받지 않을 수 없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는 행위에서는 무엇인가 탄생하고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은 그들 두 사람을 위해 태어난 생명에 대해 감사한다.

*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 다른 사람의 실상을 보려면, 즉 내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곧 불합리하게 일그러진 상을 극복하려면, 나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게 될 때에만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궁극적 본질을 알 수 있다.

*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그는 어머니다운, 그리고 아버지다운 양심을 갖게 되어야 한다. 어머니 다운 양심은 ‘어떤 악행이나 범죄도 너에 대한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는 못한다’라고 말하고, 아버지다운 양심은 ‘네가 잘못을 저지르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태도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올바른 대상만을 고르면서 대상만 찾아내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에 비유할 수 있다.

*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모든 사람을 그대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할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한, 그대는 정녕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모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면, 그대는 그들을 한 인간으로 사랑할 것이고 이 사람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도 사랑하는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 조화가 있든, 갈등이 있든, 기쁨이 있든, 슬픔이 있든 이것은 두 사람이 그들의 실존의 본질로부터 그들 자신을 경험하고 그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그들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일체가 된다는 기본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차적인 것이다. 사랑의 현존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증거가 있을 뿐이다. 곧 관계의 깊이, 관련된 각자의 생기와 힘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인식하게 하는 열매이다.

* 우리는 ‘자기 자신에 민감하지’ 못하면 정신 집중도 배우지 못한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줄곧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분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또는 그 밖의 일을 말하는가?

* 조바심이 난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백일몽에 잠긴다든가, 그 밖의 도피적 행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예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을 알아차리고, 이러한 일을 합리화하는 무수한 방법이 있더라도 결코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 내면의 조리는 왜 내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조바심내는가를 말해줄 것이다.

* 사랑을 성취하는 중요한 조건은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도취적 방향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만을 현실로서 경험하는 방향이다. 자아도취의 반대 극은 객관성이다. 이것은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고, 이러한 객관적 대상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으로 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이다. 이성의 배후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 객관적이라는 것, 곧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로서 꿈꾸고 있던 전지전능의 꿈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 사랑의 능력은 자아도취나 어머니나 가족에 대한 근친상간적 애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사랑의 능력은 성장하는, 곧 세계와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생산적인 지향을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탈피, 탄생, 각성의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 조건으로서 한 가지 성질, 곧 ‘신앙’을 요구한다. 사랑의 기술의 실용은 신앙의 실천을 요구한다.
비합리적 신앙이라는 말을 나는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이라고 이해한다. 반대로 합리적 신앙은 자기 자신의 사고나 감정상의 경험에 뿌리박고 있는 확신이다. 합리적 신앙은 근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확신이 갖고 있는 확실성과 견고성이다. 신앙은 특별한 믿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퍼스낼리티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성격상의 특징이다.

* 사랑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곧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그 신뢰성에 대한 신앙이다.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의 또 한 가지 의미는 다른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관계된다.

*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곧 위험을 무릎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하다. 사랑받고 사랑하려면 용기, 곧 어떤 가치를 궁극적 관심으로 판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신앙과 용기의 훈련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첫 단계는 어디서 언제 신앙을 상실하는가에 주목하고, 신앙의 상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합리화를 간파하고, 어디서 우리가 비겁한 태도로 행동하는가, 또한 어떻게 비겁한 행동을 합리화하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거의 갖지 못한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한다.

*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있다. 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랑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랑은 오늘날의 서양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주변적 현상이다. 생산 중심의 상품에 탐욕스로운 사회의 정신은 이러한 정신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 정신에 맞서서 성공적으로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을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대답으로 보고, 사랑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을 매우 개인주의적인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조에 중요하고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이 책의 범위 내에서는, 오직 암시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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